카테고리 없음

#연극 1인용 식탁_두산아트센터

just_epilogue 2020. 5. 25. 01:24

 

2020/05/21 20:00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창작집단 LAS의 <우리별>을 너무 재밌게 봤던 사람이라, 연출님이 구사하는 독특한 연극의 리듬을 따라가는 일이 너무 즐거웠다. 사실 소개글을 읽었을 때 '혼밥이라는 소재로 대체 뭘한다는 거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는데, 이 연극 정말 '혼밥'으로 '뭘' 한다. 직장 내 따돌림으로 괴로운 점심시간 혼밥을 맞이하게 된 주인공이 혼밥 학원을 다니면서 다양한 혼밥러들이 등장하고, 이야기가 확장된다.

제공: 두산아트센터

 사실 처음 소재에 별로 끌리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혼밥에 대해 거부감이 없기 때문이다. 같이 먹으면 같이 먹는대로, 혼자 먹으면 혼자 먹는대로. 일단 먹고 싶은 메뉴는 먹어야하기 때문에 돈만 있으면 곧잘 혼자 맛집에 찾아가고, 올해 1월 1일도 줄서는 돈카츠 집에서 저녁을 먹었던 기억이.. 돈이 없어서 그렇지. 돈만 주면 횟집? 맨날 다닐 텐데. 기본적으로 이렇게 생각하니까 초반에 주인공이 혼자 밥 못먹어서 쩔쩔 매는 게 별로 공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1인용 식탁>은 거기서 몇단계 더 들어가서 주인공을 성찰하게 한다. '혼자'일 때 느끼게 되는 이유모를 수치심과 다수에 속해 있어도 '혼자'같을 때 느끼는 불편함,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은 마음, 남을 신경 안 쓰는 사람에게 느끼는 동경 등등. 대한민국 사회에서 성장하며 느끼게 되는 감정들이 연극을 보는 동안 몸을 스쳐갔고 후반부에는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유머가 깊게 곁들여져있다. 괴로울 수 있는 그 감정의 시간들을 <1인용 식탁>은 멈추지 않고 관객을 웃김으로써 버틸 수 있게 해준다. 비주얼적으로도 복싱이라는 운동을 가지고 와서 아주 세련되게 엮었다. 혼밥 학원에서 가르치는 밥먹는 리듬, 회사 생활에서 본능적으로 날려야하는 쨉과 가드, 무림의 고수(=프로혼밥러) 설정까지. 텍스트로 하는 설명보다 시청각적으로 색다른 리듬을 끌어와서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복싱은 '인생'이라는 링 위에서 아주 아주 긴 호흡으로 '삶'이라는 경기를 해 나가야만 하는 나에게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중요한 말들을 남겼다. 예를 들면, -힘을 빼라. 고개를 돌리지 말고 똑바로 정면을 보라. 나의 리듬으로 상대방의 리듬을 끌어오라- (중략) 이유를 알 수 없는 시선의 펀치들에 무력해진 오인용(주인공)은 나처럼, 자신의 리듬을 찾아간다. 혼밥을 하면서 강약중간약을 외치면서 자신을 찾는다. (중략) 그 고되고 외롭고 어려운 시간을 거쳐 얻어낸 인용의 리듬은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아 다른 이의 리듬을 쪼개낼 것이다." 연출의 말 中

간만에 재미있는 연극을 볼 수 있었다. 2010년에 쓰여진 윤고은 소설가의 원작이 있다고 하니 찾아보려한다. 기억에 혼밥이라는 키워드가 떠오른게 2015~2016년 정도였는데. 어떤 내용이 써있을지 궁금하다. 

이상 2020년 혼자 살아가야하는 사람 모두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연극 <1인용 식탁>이었다. 상대의 리듬을 내 리듬으로 끌어오는 법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연극이 끝나면 입가에 어떤 씁쓸한 미소가 남아있을 것!